▒광양YMCA::광양기독교청년회▒
 
 
 
 
Home > 커뮤니티> YMCA소식

 
작성일 : 20-09-11 09:09
기고
 글쓴이 : 관리자 (118.♡.192.113)
조회 : 63  

함께 걷는 아름다운 사회


<포스코인재창조원 장영익교수>
<
광양 YMCA 이사>

공생과 상생^^

서로가 서로에게 힘과 위로가 되며,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이상적인 세상을 대다수가 희망하면서도, 정작 주체가 되어야 하는 우리는 고민과 수고 없이 늘 살아온 방식과 행동대로 오늘도, 내일도, 미래도 살아간다면 이 사회는 회색 빛을 언제나 벗어날 수 있을까요?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라고 하지만, 나의 언행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지, 피해가 되는지 한번쯤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삶을 기대한다면 무리한 요구일까요?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처럼 우린 함께 가야 하기에 간절한 마음을 담아 몇 자 적어 봅니다.

언젠가 10여년 전, 가족과 함께 고향 시골 길을 거닐다가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 꽃이 너무 예쁘길래 무심코 한 송이 꺾다가 아빠, 다른 사람들 생각은 안 해?” 라며 화가 났는지 얼굴이 벌건 채 호통을 치는 딸의 옳은 소리 앞에 죽을 죄인이 된 나는 한 동안 움직이지 못할 만큼 부끄럽고 또 부끄러웠던 적이 있었는데, 몸에 좋은 약은 쓴 법이듯, 이 사건(?) 이후에 제 삶은 지금의 나의 언행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력을 끼칠지를 생각하는 사람으로 변모 시켰습니다.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앞장 서보자는 취지에서 대다수가 머리(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단어를 꺼내, 가슴으로 옮겨서 행동하지 않으면 안되겠기에 2가지만 제언하고자 합니다.

첫째, 서로 존중하며 살아갑시다.

잘 알고 계시다시피 정의의 두 원칙은 인간의 상호 존중을 가져옵니다. 성경에 네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했으며 제가 좋아하는 임권택 감독은 나는 남에게 욕을 먹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남을 욕하지 않는다라고 방송에서 말하던데, 이렇듯 예절만큼이나 결코 퇴색되지 않는 존중을 이제 서로 생활화 해 나갑시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기도하자던 교회가, 정작 국가와 국민을 위험과 불안으로 몰고 가는 일을 서슴지 않던 교회의 모순도, 우리 집 개는 사람 안 문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내세우며 목줄도 없이 큰 개를 풀어 놓는 주인도, 내차니까 내 맘대로 운전하면 되지 않느냐는 몰지각한 운전자도, 아랫집에 소음 분쟁으로 이사 보내면서도 내 집에서 내 맘대로 하는 게 뭐가 잘못되었느냐고 묻는 가장도, 내 자식이니까 내 소유인양 함부로 대하다가 결국 가출하게 만드는 미 자격자 부모도, 부하의 감정과 사생활은 물론 의견/인격조차 무시하며 종 부리듯 대하는 상사도, 남의 생각까지 자기 생각과 동일시 여기며 임의적인 추측과 판단을 일삼는 그들도, 내 생각은 늘 옳다고 착각하는 답답한 사람도, 진보와 보수가 서로 존중하지 않으면서 자기는 존중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모순들, 정말이지 셀 수 없이 많은 非존중 사회를 보면 마음이 아려옵니다. 이제는 다름과 틀림을 명확히 구분하여 나와 다른 사람들을 존중합시다. 존중의 시작은 인정입니다. 타인의 생각, 의견, 가치관, 성격, 성향 등등 모두 인정하는 습관을 시작합시다. 다름의 반대말은 같음이고, 틀림의 반대말은 옳음 입니다. 나와 다르다고 잘못된 것이 아님을 재인식하고 인정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존중의 시작입니다.

둘째, 서로 배려하며 살아갑시다.

배려는 짝처럼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 관심에서 시작 되며 나를 우선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따스한 마음입니다. 존중과 함께 작은 정성과 관심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함께 행복해 질 수 있는 지름길 중에 하나가 바로 배려문화 입니다. 양보가 닥쳐서 상대를 생각하는 것이라면, 배려 닥치기 전에 먼저 상대를 위하려는 의도가 필요합니다. 인사는 직위가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이 아니라 먼저 본 사람이 반갑게 상대의 존재가치를 인정해주는 모두 행위가 바로 인사이듯이 배려는 누가 누구에게 해야 한다는 식의 조건은 필요하지 않습니다만 가능하다면 강자가 약자를, 부자가 빈자를, 높은 직급자가 낮은 직급자를, 나이가 많은 사람이 적은 사람을, 많이 배운 사람이 적게 배운 사람을 먼저 배려해줄수록 더 빠른 속도의 배려문화가 정착될 수 있다고 확신 합니다. 잘못된 철학과 신념은 자칫 사회를 병들고 암울하게 만들고 불통사회를 만들 수 있고,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살아가는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 많을수록 흉악한 범죄자들을 양산하여 당사자도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사회적 악순환의 연결고리와 Cycle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골프장에서 골퍼들이 캐디의 능력과 역할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회, 교통수단 이용 중에 임산부나 노약자, 어린이를 좋은 자리로 안내하는 사회,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국가와 단체가 나서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당장 내가 먼저 그들에게 고운 시선과 아름다운 말이라도 먼저 선물하는 사회를 꿈꿔봅니다. 혼자보다는 둘이, 둘 보다 셋이, 셋 보다는 여럿 다 같이 하면 더욱 좋겠습니다.

제가 드린 의견들 중에 물론, 사회가 정해놓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그것을 그들의 노력이 부족했다거나, 게으름 때문이라고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개인의 탓이 없다고 말하지는 못하겠으나 모든 사람에 대해 그와 같은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강자의 폭력적 논리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고 사랑이란 부분이 아닌 전체적인 것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것이며, 잃은 양, 포도원 품꾼, 착한 사마리아인 등의 비유 적용을 통해 세속의 논리에 거세게 저항해야 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면 더더욱 타자, 특히 약자에 대한 시선에 주의를 기울여야만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벌레만도 못한 우리처럼 인간이 되셨고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십자가에 달리시어 피범벅이 되고 온 몸이 너덜너덜한 채 우리를 안아 주셨습니다. 그로 인해 구원이 비로소 임했음을 기억합시다.

마지막으로 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질병에 취약한 사람 중 생존을 위해 개인 위생, 안전을 어쩔 수 없이 포기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그들은 아무래도 취약 계층일 가망성이 큰 바, 그런 이들을 병균사람 취급함으로써 2, 3차 가해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환대의 문화가 우리 사회 안에, 먼저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 하는 교회에서부터 온전히 형성되면 좋겠습니다. 서로의 마음이 따뜻하고 넉넉하면 작금의 사태도 훨씬 수월하게 이겨낼 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감사합니다.